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H 사건 (문단 편집) == 전개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cdn2.diodeo.com/1306243-01.jpg|width=100%]]}}} || 노동자들의 주간 조업, 야간 농성이 계속되던 가운데 8월 6일 회사는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내고 7일에는 [[기숙사]] 식당까지 폐쇄했으며 퇴직금·해고수당을 8월 10일까지 수령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한다고 공고하였다. 이에 YH 노동자들은 야당인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호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여담으로 처음 노동자들이 신민당 당사를 찾아갈 때는 목욕 바구니를 들고 왔다고 한다. 만약 경찰에게 들킬 경우 기숙사 내 샤워실이 단수되어서 목욕탕에 가러 나왔다고 둘러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이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흔쾌히 신민당사를 집회 장소로 내주는 한편 당직자들을 동원해 주변을 감시하는 경찰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YH무역 여성노동자 187명은 8월 9일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회사 정상화와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 투쟁을 시작하였다. 8월 10일 노동자들은 긴급결사총회를 열어 YH무역을 은행관리기업으로 인수할 것과 장용호 회장을 소환할 것, 기업 정상화와 생계대책을 강구할 것 등을 결의하면서 계속 농성하였다. 박정희와 여권은 YH 사건의 배후에 김영삼 총재가 있다고 확신했는데 신민당 당사를 40시간 동안이나 노조 농성자들에게 내준 것 자체가 그렇다. 이런 와중에 신민당에 내분이 일었다. [[조일환(1916)|조일환]]씨 등 신민당 간부 3명이 김영삼의 총재직 당선은 무효라며 서울지방법원에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contents.kdemo.or.kr/case03_img11_3.jpg|width=100%]]}}}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www.chogabje.com/0605_b1_2.jpg|width=100%]]}}} || >"1979.8.9.10:00시경, YH회사 200여명이 회사 내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 집결하여 농성을 벌임으로서 발단이 됐습니다. 8.10.10:00경, 김계원과 김재규가 강제해산을 결의했습니다. 사람들이 투신을 하면 그물망, 매트리스 등의 안전장구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는 숫자가 부족함으로 며칠간 연기하자는 실무자들의 건의가 있었지만 김재규 부장의 강행지시로 안전대책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8.11.02:00에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 해산한 적이 있습니다.” >---- >1979년 11월 18일, 계엄군법회의 당시 김정섭 중앙정보부 3차장보의 진술 8월 11일 새벽 2시 [[김효은(경찰)|김효은]] 서울시경 기동대장이 지휘하던 1,000여 명의 경찰 기동대가 이른바 ‘101작전’을 개시하고 신민당사에 난입하여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강제 연행하였다. 작전은 23분만에 종료되었지만 그 23분 동안 이들을 막는 신민당원들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으며 마음대로 건물을 부수고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관계자들까지 닥치는 대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21살 여공 김경숙(당시 노조 집행위원)이 [[사망]]하고 신민당 의원과 당원, 취재 중이던 기자, 신민당사에서 일하던 용역, 경비들까지 경찰에 무차별 구타당하여 중경상을 입었다. 심지어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박권흠]][* 정작 전두환이 집권하자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대변인까지 경찰에 폭행당해서 '''갈비뼈가 골절되고 얼굴이 뭉개졌으며''' [[박용만(1924)|박용만]] 의원은 다리가 부러지고 [[황낙주]] 원내총무가 어깨를 얻어맞았다. 김영삼 총재는 구속까지는 되지 않았으나 [[상도동(서울)|상도동]] 자택에 끌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kppaimg.castnet.co.kr:8080/6f7dfc0b6a945ce628b078efw540.jpg|width=100%]]}}} || || 경찰 진입을 막다가 형사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가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br]참고로 신민당사에서 상도동 자택으로 끌려가는 동안[br]형사들에게 모욕적 언사를 들어 가면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 이날 경찰은 노조 지부장 최순영 등 여공 172명과 경찰의 강제 연행을 제지하던 신민당 당원 26명을 강제로 연행하였다. 정부는 YH무역 노조의 신민당 농성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인명진]]·[[문동환]] 목사, [[이문영]] 전 고려대 교수, 시인 [[고은(시인)|고은]] 등 8명을 구속한 후 도시산업선교회를 배후로 지목했다. 특히 진압 직전 김영삼의 모습이 압권이었는데 이순구 서울시경국장이 전화를 걸어 총재를 바꾸라고 고압적으로 말하자 김영삼은 건방지다며 전화를 끊어 버렸고 진압 작전이 시작되자 신민당사 밖에 2000명의 경찰이 몰려온 상태였음에도 이를 지휘하던 허웅 [[서울마포경찰서]]장에게 다가가 '''"네놈이 저 여공들을 모두 죽이려 하냐!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는 말과 함께 '''싸대기를 날렸다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1942298|#]] 한편 [[양일동]]이 당수였던 [[민주통일당]]도 경찰의 진압을 비난하면서 이 투쟁에 동참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